에세이가 있는 곳

스토킹

랍비의 숲 The Forest of Rabbi 2022. 9. 2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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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역에서 안 좋은 사건이 생겨 스토킹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분명 이게 하루 아침에 있었던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날로 험악해지면서 스토킹이 단지 스토킹만으로 끝나지는 않는 것 같다. 1980년에는 좋아하는 여가수를 스토킹 하거나, 남자 가수를 스토킹 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끔찍했던 일이 있었나 싶다. 스토킹을 당하면 그러지 말라고, 아니면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께 소개하고 심지어 식사까지 하고 가라는 소문 아닌 소문을 들은 적도 있었다. 실제로 스토킹이라기보다는 인기 가수에 대한 너무나 좋은 감정이라고 써두고 싶다. 심지어 몇 십년을 쫓아다닌다고 무섭다고 하는 가수도 들은 것 같은데 그 후로는 아무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스토킹을 하는 것일까. 

 다른 이의 삶을 교란키면서 기거이 이루려고 하는 마음...그것은 성취나 목표와 다를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싫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 어쩌면 사랑을 가정한 집착일 것이다. 사랑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달콤한 논리를 씌운 폭력일지도 모른다. 먼저 망상이니, 어릴 때 가정 교육을 못 받았다느니, 감정 결핍 혹은 호르몬이니 정신적 문제니 이런 것은 제쳐두기로 한다. 이런 것들은 육체적 신체적 문제이니 여기서 얘기할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냥 보통 우리 삶에서의 집착을 얘기하기로 한다. 

나는 어느 작가가 딸을 키울 때 쉽게 헤어질 수 있는 남자랑 만나라 라는 말을 요즘 생각해보았다. 쉽게 헤어질 수는 없겠지만 , 어느 정도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어야,  삶을 살 때, 다른 의견이 부딪칠 때 물러나고 조율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는 인간의 융통성 내지 탄력성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질기다고 끝까지 고무줄을 늘려 자신을 자랑하는 사람을 원치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매사에 한 쪽 만을 보기 때문에 어디서 부딪히든 부딪힌다. 이는 비단 사랑의 관계만은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종교를 생각해보자. 우리는 자신의 종교를 최우선한다.  인간은 자신의 원칙이, 자신의 종교가 맞다고 생각한다. 이는 다른 종교인들을 불러 모아도 자신의 종교가 다 맞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11~13세기에 일어난 십자군 전쟁은 이슬람교도가 차지한 예루살렘을 유럽의 기독교인들이 차지하려고 하였다. 처음에는 자신들의 신념이 옳다고 해서 실행하였지만  그 본래의 목적은 점점 희미해지고 권력이나 부, 영토에 대한 마음으로 기울어져 버렸다. 그리고 결국 유럽은 예루살렘을 차지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들은 자신의 신이 맞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확실한 전쟁이었다. 신이 바라지 않는...... 

사람보다 신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원칙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법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규칙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원리 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규범에 복종한다. 

사람보다 그 뒤의 것을 복종한다면, 중세 이후의 르네상스 시대는 뭐하러 나왔단 말인가. 로스트 제너레이션과 비트 제너레이션은 왜 나왔단 말인가. 신 중심이 인간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인간중심주의의 르네상스가 나오고, 눈부신 발전의 과학, 문명, 기술이 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환멸로 상실의 시대가 나오지 않았던가. 마찬가지로 비트 제너레이션은 2차 세계 대전에 대한 괴로움으로 1950년대 보헤미안 스타일로 문학, 예술가들이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에서 일어나지 않았는가. 

도덕, 법칙, 종교보다 윤리가 먼저라는 말을 배운 적이 있다. 윤리는 일반적인 윤리이기보다는 법과 도덕을 뛰어넘는 것이다. 즉 선과 악을 나누기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조 속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에서 쓰러진 할머니를 구하러 가야 하지만 빨간불이 켜졌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이는 사람보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것이 것이다. 그러나 빨간불이 켜졌어도 구하러 가는 청년이 있다. 그렇다면 이는 사회의 구조를 뛰어 넘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 본성으로 가는 것, 실존으로 가는 것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보다 뭔가 우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 마음이 울쩍하다. 심지어 신도 사람이 태어나고 나서 생각했기 때문에 "만들어진 신"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는 관계 속에서 네가 있어 내가 있고, 내가 있어 네가 있음을 생각할 때가 아닌가. 그대는 한 쪽으로 삶을 스토킹하는가. 삶의 원칙과 법만은 스토킹 하고 최고의 가치라고 고집하는가. 오로지 정의 쪽으로만 스토킹 하여 정의롭지 않는 것, 예를 들면 부모님이 재산을 조금 덜 주었다고 '형평성,'공평성' 을 들이대며 불처럼 화를 내고 부모님을 버리기로 스토킹했는가. 가난한 사람들은 일 안해서 그렇다며, 그들이 살아온 총체적인 삶에 대해 비웃으며, 복지는 안 된다고 스토킹하는가. 장애인들에게 얼마나 사회에서 잘해주는데 하며 땅값, 아파트값 떨어질까봐 안된다고 스토킹하는가. 반지하 사람들이 라듐 나오는 한심한데서 산다고 스토킹하는가. 그대는 돈 쪽으로만 스토킹 하는가. 아니면  게르음쪽으로만 스토킹하는가. 아니면 마음에 맞지 않는 친구는 바로 자른다는 쪽으로 스토킹하는가.  나 또한 한 쪽으로 스토킹 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가끔씩 이렇게 한 쪽 방향으로 스토킹 할 때.... 누군가가  나 좀 깨우쳐 주었으면 좋겠다. 그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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