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 망우리는 유관순 열사의 합장 묘역이 있는 곳이다. 처음에는 서울 이태원에 있었으나 일제가 군용 기지를 만들기 위해서 이장이 된 것이다. 1935년~1936년 4,8일 사이에 이태원에 계셨던 무연고 분들 28,000(2만 8천 명) 여의 기가 이곳 망우로 공동묘지로 오게 된 것이다. 애석하게도 유관순 열사는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하시고 목숨을 바치셨지만 일제에 의해 찾을 수가 없게 되었고 그래서 이태원에 계신 다른 분들과 함께 합장이 되신 것이다.
나는 종종 망우리 공원을 산책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유관순 열사를 기리거나 식별할 수 있는 표지판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인가 이렇게 표지판도 잘 세우고 '유관순 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도 세워져 있었다. 늦었지만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 몇 주 전에는 한가위가 있어서 거기에 커피도 마시고 바람도 쏘일 겸 들렀다가 문득 케이크와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 유관순 열사 생각이 몹시 났다. 이상했다. 유관순 열사는 추석을 제대로 보내신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쟁반을 들고 합장묘까지 걸어갔다. 누군가 놔두었는지 무궁화 꽃이 재단에 피어있었다. 시들어서 오히려 더 슬프고, 추석이라 더 가슴에 와닿았다.
무궁화나무가 멀찌감치 분묘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꽃은 많이 졌지만 어찌 된 일인지 아직도 피어있었다. 날씨는 맑고, 작은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소리가 시원했다. 사람들이 한 두 명 와서 고개를 숙였다 갔다. 유관순 열사 표지판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오래전 나는 유관순 열사의 그림을 그렸었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너무도 무거운 마음 때문에 선뜻 얘기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 그림은 어디로 간 것일까.. 다시 한번 찾아봐야겠다. 여기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다시 적는다. 아마도 영어 공부하듯이, 단어 외워듯이 여러 번 외워야 할 것이다. 그것은 그분에 대한 감사와 은혜에 대한 가장 작은 보답이라고 해도 실례가 되지 않을까.
유관순 열사
1902년 충청남도 천안에서 출생
1916년 미국 선교사의 추천으로 이화학당에 입학
1919년 3.1 운동을 하심
1919년 4.1일에 아우내에서 장터에서 만세 시위를 하다가 투옥되심
1919년 공주지방 법원에서 5년형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
1920.9월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하심
1962년 건국 훈장 국민장 추서
나는 종종 유관순 열사는 어디서 그런 큰 힘이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람은 다 똑같이 태어나는데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것도 온갖 고문은 더욱 그럴 것이다. 신이 있다면 그리고 세상을 구원하라고 신대신 누군가를 보내셨다면 아마도 유관순 열사가 아닐까. 나이도 어리고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나이가 아닌가. 그런데 어떤 의지로 어떤 믿음으로 자신을 기꺼이 밀어붙이셨단 말인가.
혹시 태어나셨다면 우리나라에 다시는 태어나시지 않았기를..... 얼마나 힘드시고 지긋지긋하셨을까.... 하지만 나는 그래도 그분이 다시 우리나라에 태어나셨으면 바란다. 죄송하지만.... 꼭... 그러셨기를.... 왜냐하면 그분으로 인해 내가 아는 역사는 늘 든든하고,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되는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