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곳

안개

랍비의 숲 The Forest of Rabbi 2022. 9. 2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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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구리를 거쳐 남양주를 빠져 나와 본 적인 있는가. 안성을 가기 위해 나는 아침 일찍 차를 몰았다. 안성은 '안성 맞춤'이라는 말까지 나올정도로 유기 그릇이 유명하지만 정작 나는 그곳에서 나온 그릇을 본 적이 없다. 봤다 하더라도 안성에서 만든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생활 유기가 아직도 생산된다고 한다. 안성하면  또 다른 무엇이 생각나는가.  혹시 안성이라는 말이 들어간 라면이 생각나는가. 내가 지나가다보니 거봉 포도 판매라는  글싸가 길가에 붙어있는 것을 보았다. 아마도 이 농작물이 각광을 받는가 보다. 또한 배와 사찰도 유명하다고 하는데 이는 천천히 알아볼 일이다.  아무튼 나는 안성에 가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아침 일찍 중부고속도로를 타야만 했다. 그런데  2개의 중부고속도로가 있는 줄 몰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몹시 헷갈렸다. 그러나 확실한 건 중부고속도로는 건물이며 더 발달된 풍경이고, 제 2 중부고속도로는 산이며 나무며 더 시골스럽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에 떠날때는 무섭기 때문에 중부 고속도로가 더 좋다. 건물들이 주는 안락함과 뭔가 확실하고 명료한 물체가 나타나 무섭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벽이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7시 30분 이후면 제 2 중부고속 도로를 타는게 더 좋다. 이유는 바로 안개 때문이다. 

안개는 김승옥의 '무진기행'에서의 안개와 비길 바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안개가 완전히 산을 가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산 중턱에까지 내려온 안개는 사물을 잡아먹어 산 윗 부분이나 나무숲이 보이지 않기도 한다. 그럴 때면 문득 나는 저렇게 있는 자연이 왜 갑자기 보이지 않는데 허전하고 내 자신이 사라져가는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묵화를 보면 산에 자욱하게 낀 안개들은 뭔지 모를 신비함과 도에 취하고 싶은 느낌마져  드는데 말이다. 아마도 직접 볼 때의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할 때 모든 것을 다 가져와서 표현할 수 없는 한계 때문인가보다. 언어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언어로 표현하면 표현 안 되는 것들이 있다고 하는 것처럼...오죽하면 노자가 도덕경에서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줄곧 자연은 거기에 있고 그래서 안개는 신비하다는지 무섭다든지 그런 느낌으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제 2 중부고속 도로를 타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 이전의 안개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리고......그 안개로 인해 나는 얼마나 알게 모르게 사물에 의지하고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저 산은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나무들은 그렇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새들은 가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로 인해....심지어 빌딩과 전봇대와 논밭과 도로와 세상의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사라질 때.......

나는 그것들에 얼마나 내가 부모님처럼 ,친구처럼, 애인처럼,.종교처럼 의지했는지.....그리고 안개로 인해 내 영혼이 얼마나 사물에 머물러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을 안식처 비슷한 거라고 비유할 수 있을까. 거기 있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사라져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어져버렸다. 마치 고아같은 느낌이랄까. 심지어 무서운 느낌마저 들었다. 만약 안개같은 것으로 인해 세상이 다 사라지면  무엇을 위해 살아갈 수 있을까. 예를 들어 핵폭탄..... 사물을 쳐다보면서 나는 그 모든 사물과 알게 모르게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물이 주는 느낌과 감각을 받아들이고 나 또한 그것들에게 주었나보다. 

더 일찍 출발한 날은 반대로 캄캄해서 안개는 보이지 않고 마치 허당을 밟는 느낌이었다. 이 또한 사물이 시커멓고 또렷하지 않아 마치 어느 검은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안개와 어둠의 이 두 느낌은 거의 디스토피아를 느끼게 해주었다. 사물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었다. 즉 사물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대화를 하고, 심지어 우리를 계속 살펴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대가 단지 사물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철저하게 사물로 여겼나보다.

사물이 신처럼 다가오는 날이었다. 그냥 의지하고 싶은.....그러고 보면  안개가 괜히 내려오는 것은 아닌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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