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

대추가 익을 무렵

대추가 익을 무렵 책을 읽다가 갑갑하고 커피가 마시고 싶어 밖을 나왔다. 재개발 아파트라 둘러보면 참 정이 깊다....오래 되어서 낡은 것이 친근하다...벗겨진 페인트칠이며 부서진 시멘트 바닥이며....그래서 흙들이 더 많이 보이고 화초들도 그렇게 난리를 칠 수가 없다. 아주 제 멋대로 마음껏 자란다....어차피 몇년 있으면 없어지니 누가 가꿀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부추며, 토란이며, 수세이며....잡초며....신났다..신났어.....저렇게 서로 부둥켜 안고 넘어져 있고, 풀들끼리 머리를 끄뎅이고.....나팔꽃들은 우리 집 1층 베란다를 기어 올라가 2층 집까지 손을 뻗고 있다. 내가 먹고 버린 뽕나무 옆매가 작년부터 자라 이제는 배란다를 덮을 정도이다. 올해는 딸랑 까만 오디 하나 먹었다........

무인 가게

책을 읽다가 답답해서 커피랑 과자를 사러 나갔다. 요즘은 무인 가게가 있어서 카드만 넣고 계산을 하면 바로 살 수가 있다.사람이 없기 때문에 신경을 쓸 일이 없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러다 서서히 기계 들에 의해 잠식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든다. 최근에 카드 하나를 만들었는데 밤에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내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전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 받았더니....AI가 묻고, 내 목소리를 인식하고, 내 거래 은행이랑, 주민번호 끝자리랑 대답하는대로 했더니 승인을 해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소름이 끼친다....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면 이제는 인간이 전화를 하면 반대로 소름이 끼칠 것 같다.. . 이제 대형 마트에서는 계산도 사람이 아니라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기계 6대가 들어오면 최소한 3명 이상의..

마중

마중 오늘 비가 많이 내렸다. 나무 아래에 세워놓은 차들 위에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아직 단풍이 시작되려면 더 있어야 하는데 벌써 가을이 오고 있다. 10월 3일이고 비까지 오니 이제 부터 슬슬 날이 추워질 모양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라디오에서는 비가 관련된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오늘은 울라라 세션의 '서쪽하늘'과 김호중의 '우산이 없어요'가 나왔다. '서쪽하늘' 노래는 언제나 들어도 좋다. 제목을 '동쪽하늘'이라고 했으면 아마 덜 슬프고 '비'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차를 달리자 유리창에 있는 낙엽들이 비에 젖어서 간신히 떨어진다. 간밤에 비가 내렸나보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다시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오늘 날에는 누군가를 위..

자살 충동

어젯밤부터 자살 충동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모두가 잠든 밤에....우울증에 시달려 사이트를 검색하며 그 방안을 찾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 글 중에 '우울증에 대하여'가 있는데 원래 내가 글을 쓴지가 최근이고 거의 볼 일이 만무한데 이 글이 밤에 조회수가 나와서 깜짝 놀랐다. 나는 밤에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잘 알지 못하고 그냥 늘 잠을 잤다. 그러나 오늘 아침 일찍 산책을 하면서 그 옛날 중학교때 청소년들을 위한 좋은 글을 썼던 어떤 수필 기고가가 생각났다. 지금은 이름도 잊어버렸지만 그 분의 소책자는 집으로 배달되어 가끔씩 건성으로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떤 때는 고개를 끄덕였던 것도 같다. 바로 그 기분이 오늘 산책하다 들었던 것이다 그 분은 청소년들을 위해서 삶의 소중함과 여..

보육원 아이들

최근에 자신의 통장에 돈이 들어온 줄도 모르고, 대학 등록금, 생활비 등을 비관해서 삶을 마감한 대학생의 얘기를 들었다. 안타깝다는 말로도 충분하지 않을 정도이다.......분명 그 학생보다 우리는 앞선 세대이다. 그렇다면 앞선 세대들이란 무엇일까. 왜 우리는 그 학생들보다...더 일찍 태어나고, 왜 우리는 자식들보다 일찍 태어났을까. 또 왜 어떤 사람은 선생님들보다 늦게 태어났으며, 또 어떤 사람은 왜 언니나 오빠로 태어나고...또 누구는 왜 동생으로 태어났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서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도대체 왜 나는 동생들보다 일짝 태어났을까....무슨 하늘의 뜻이 있을까. 그런데 그 해답을 찾았다. 스피치를 잘하시는 김미경 선생님의 오래된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발견한 것이다. 김 선생님의..

우울증에 걸려서

우울증이 없는 사람도 있을까. 인간이라면 이런 감정은 한 번쯤 다 겪지 않았을까. 본인 또한 우울증때문에 무척 힘든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뭐가 부족해서 그러느냐, 다 복에 겨워서 그런거라고 하지만...정말 호르몬이나 신체적, 물리적 문제가 아니라면 이 우울증이라는 놈은 고약하기 그지없다. 삶 전체를 서서히 파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을 못하게 하고, 발목을 붙잡아 한 자리에 묶어놓는 쇠사슬 같다. 또한 그 자리에서 미이라로 죽어가도록 최선을 다한다. 우울증이라는 녀석은 그야말로 다른 세계에 눈독을 들이는 것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놈하고 사귀면 여러분 중에 대다수는 필시 그 놈에게 끌려다니거나 그의 말을 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네 귀에다 대고 "어서! 어서! 실행해!" 하고 ..

노인 속의 젊은이

데이비드 호크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면 "아! 그 그림"이라고 금방 알아 차릴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3년 전 쯤 보건소에 간 적이 있다. 워낙 배가 뚱뚱하게 나와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검사를 해준다고 관리도 해준다고 하길래 들렸던 것이다. 병원에만 갔지 보건소에는 딱히 들릴일이 없어서 내게는 무척 생소했다. 대기 등록을 하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일어서서 서성거렸는데 안 쪽 벽쪽에 커다란 숲 그림이 보였다. 호크니의 숲 그림이었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싶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방황하는 나에게 그 그림은 뭔가 낯설게 다가왔다. 80대가 넘는 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색깔이 알록 달록, 다채롭고 영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