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곳

마중

랍비의 숲 The Forest of Rabbi 2022. 10. 4.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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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오늘 비가 많이 내렸다. 나무 아래에 세워놓은 차들 위에 붉고, 노란 나뭇잎들이 가득 떨어져 있었다. 아직 단풍이 시작되려면 더 있어야 하는데 벌써 가을이 오고 있다. 10월 3일이고 비까지 오니 이제 부터 슬슬 날이 추워질 모양이다. 이렇게 비가 내리면 라디오에서는 비가 관련된 노래들이 많이 나온다. 오늘은 울라라 세션의 '서쪽하늘'과 김호중의 '우산이 없어요'가 나왔다. '서쪽하늘' 노래는 언제나 들어도 좋다. 제목을 '동쪽하늘'이라고 했으면 아마 덜 슬프고 '비'라는 단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차를 달리자 유리창에 있는 낙엽들이 비에 젖어서 간신히 떨어진다. 간밤에 비가 내렸나보다. 오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지만 다시 비가 부슬 부슬 내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가 오늘 날에는 누군가를 위해 마중나가는 사람을 보고 싶다. 그렇다... 시골에 살 때 할머니는 아빠가 안 오시면 마당을 나와 대문 앞 길에서 아빠를 기다리셨다. 술 한잔을 하고 오시는지...늦어질 때 말이다. 그뿐이랴....자식들이 안 오면 어머니는 또 밖에서 추위에 떨며 기다리셨다. 그러다가 기다림이 길어지면 아예 신작로까지 가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렇게 혼자 오는 법이 없었다. 눈이 내릴 때도, 비가 내릴 때도....책가방을 들고 온다든지....늦게 온다고 잔소리를 할 망정.... 소중한 물건을 챙기듯.....사람을 챙겨 가지고 들어오셨다. 그러나 이제는 각자 도생의 시대가 왔다. 이제는 알아서 자신을 챙겨야 하는 시대인가 보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 나는 강의를 끝내고 동네 지하철 역에서 내리려고 개찰구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식구의 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먼저 개찰구로 나갔다. 그러자 기다리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 2명이 아빠에게 다가갔다. 여자애와 남자애의 머리는 젖어 있었다. 아마도 머리를 감거나 샤워를 한 모양이었다. 아내가 다가와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왜 애들을 나오라고 해." 정확한지 모르지만 이렇게 들었던 같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막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남자는 어린 아이들을 손으로 끌어당겼다. "왜? 이렇게 나오니까 좋잖아."남자의 말이었다. 여자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아무 말 없이, 남자가 왜 역까지 나오게 했는지 약간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아이들 귀찮게 불러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시골 마당은 넓었다. 마당 왼쪽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그 앞에는 물펌프가 있었다. 물이 나오는 아래에는고 무대야가 있었고, 거기에는 바가지가 있었다. 물론 붉은 고무 대야에는 물이 항상 있었다. 우리는 물을 마시고 싶으면 그 물을 넣고 펌프질을 재빠르게 해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물만 없어지고 힘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 쪽 손으로 물을 넣으면서 펌프질을 하다가 어느 정도 감이 오면 바가지를 내던지고 물이 올라오도록 계속 반복해서 깊게 눌러주어야했다.어떤 때는 거의 꼬마정도의 몸무게를 싣을 정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때는 물만 먹고 꾸르륵 소리를 내며 물이 안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면 진이 다 빠질 정도였다. 또한 어떤 이유로 물이 없으면 대야를 기울여 남아 있는 물을 싹싹 긁듯이 마중물을 모아야 했다. 물을 길어올리기 위해 마중나갈 물이 필요하듯이, 우리에게도 마중이 필요한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마중을 나가면 왜 마중나왔느냐고 핀잔을 주거나 집에서 할 일 하라고...시간 낭비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 맞는 말이지만 인간이라는 것이 그렇게 시간 낭비 안 하는 쪽으로 간다면....사실 거의 삶 자체가 시간 낭비 아닌가.....도대체 시간 낭비 안 하는 것은 무엇인가...영어 공부? 자기 개발? 악기 연습? 밥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거? 솔직히 이런 것을 뒤집어서 생각해보자....이런 것도 엄밀히 말하면 어떤 이에게는 시간 낭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이것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영어 공부 하느라 그 많은 금쪽같은 시간을 다 써버리고....그렇다고 딱히 외국어를 잘하지도 않는 경우 말이다...또한 악기 연습도 하다가 말면 다시 퇴보하고...이것도 마치 시간 낭비라서...더 좋은 가족 여행 가기나 요리법 배우기를 해서 가족들을 더 행복하게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솔직히 시간 낭비라는 것도 어느 정도 개인에따라 상대적인 것 아닌가.....회사 다니는 것도 거의 자기를 위한 것 같지만 엄밀히 보면, 내 시간이 없으니 시간 낭비가 않은가.

옛날에는 갑자기 비가 오면 부인들이 버스 정거장에서 우산을 들고 서 있었다고 한다. 그 수가 무려 10명 정도이기도 하였다고....남편이 버스 정거장에서 내리면 같이 우산을 쓰려고 한 개만 가지고 나온 여자들도 있다고 한다. 그러면 같이 걸어가다가 데이트로 이어지고 그러면 어디 가서 맛있는 거 먹자고....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을 나누기도 하였다고 한다. 비가 올 때면 그때 정거장에서 남편들을 기다리던 아낙네들이 떠오른다는 분이 계시다. 그뿐이랴. 학교 앞에서는 자식들이 비를 맞을까봐 우산을 들고 서 계시는 어머니들도 많이 보았다. 우리 어머니는 시집살이에 시동생에 늘 할 일이 많아서 우산을 들고 기다린 적은 없으셨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마중을 나가고 싶다.....그런데 이제 마중나갈 사람도 없다.....할머니 두 분도 다 돌아가시고.....할아버지도 돌아가신지 오래 되셨다.....부모님은 마중 나가기 전에 미리 왔다 가신다....자식들에게 폐를 끼치기 싫은 모양이다.
이제 나도 마중보다는 배웅에 익숙해져있다. 떠나는 것에 익숙하다니....만나는 기쁨을 더 많이 누려야 삶이 풍요해지고...신날텐데......그래서인지 누군가가 나를 마중 나오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너무 기쁘다.... 아마도 그 역에서 가족들에게 전화해 나를 마중나오라고 했던 그 남자분도 그런 기분을 맞보고 싶지 않았을까.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하다가 문득 나를 누군가가 소중히 여기고.....기다리고 있구나 하는 반가운 마음을.... 그래서 인지 나는 그 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가  마중 나오라고 하기 전에 어느 날 문득 마중을 나가봐라....그리고  살펴봐라 ᆢ상대방의 얼굴이 어떤지...


https://www.youtube.com/watch?v=f1Q2nOyh2Uw&list=RDMM&start_radio=1&rv=rlxaDAPddQ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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