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에 관하여
포도가 익어서 먹기 좋은 계절이다. 안성에 갔다가 서울로 올라오면서 포도 농장에서 재배한 것이라 쓰여있어 차를 멈추었다. 생각보다 싸지는 않았다. 아마도 갓 따서 싱싱하고 맛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도 야박하게 하고 싶지 않다며 킬로그램을 더 얹어주셨다. 어디서나 정은 있는 것 같다. 한 상자를 사서 차 안에서 먹어보았다. 머루포도라 맛이 달고 향도 진했다. 오래 전 이솝 우화에세 <여우와 신포도>이야기를 들었거나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여우가 포도를 따먹으려고 했는데 아무리 애를 쓰고 점프해도 안 되자 결국 포기한다. 그러면서 어차피 저 포도는 신포도라고 하는 것 말이다. 사실 신포도인지 단포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나 자기 위안을 위해서 신포도일 거라고 단정해버리는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이나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해서 괴롭기 때문에 자기 망상을 하는 일이다. 상황을 왜곡하여 정신적인 위안을 삼으려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해보고 안 되면, '에이, 나는 잘 안 되는 사람인가봐, 내가 노력이 부족한가. 이 길이 아닌가봐....'라고 대개 생각하지 않나. 그러나 여우는 단포도일 수도 있는데 신포도라고 왜곡하면서 자기를 위안 삼았다....만약 이것이 자주 발생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그러면 자기 무력감 혹은 남의 성공에 대해서 별거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지 않을까...저렇게 이룬거 별거 아니라면서....포도는 지금 내 입안에서 터지며 달콤한 즙을 낸다.씨를 뱉고 껍질은 먹어도 된다는 말에 먹을까 말을까 망설인다. 비닐 하우스에서 재배하여 어릴때 부터 종이에 씌워 농약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잘근 잘근 씹다가 그냥 뱉는다....포도를 먹으니....포도 효소와 포도주를 생각하게 된다. 포도는 버릴 게 없는 것 같다.
요즘 들어 신포도를 많이 생각하게 된다. 어차피 뭐라고 해도 세상은 돌아가게 되어있고 어느 기괸이든 회사든 바뀌지 않으니 '그건 그저 신포도'야 하는 것이다. 최근 모 기관에서 강사비 측정을 1회를 2시간로 쳐서 5만원을 주고, 다른 강사들은 2회를 나누어서 쳐서 6만원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것을 내규로 규정했고, 또 다른 기관에서도 그렇게 많이 한다고 하였다. 어차피 그만두지 않을 거면 을의 입장인 사람들은 여러 상위 기관에 전화했다가 '그래,어차피 이 나이에 갈데도 없고, 써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그때 우연히 시간이 되어서 지원했다 된거니...거의 덤으로 강의를 한거나 다름없지.....' 하고 신포도이론을 꺼내는 것이다. 이 신포도는 점점 확대되어 본인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가가 마음에 안 들거나 혹은 사회가 마음에 안들면, '그래 어차피 내가 지지했는데 뭐 어쩌겠어... 다른 사람이 되었어도 똑같았을거야...더하면 더 했지 덜 하겠어? ' 그러면서 누가 그 정치가나 정당을 미워하면.....'그 쪽은 더 그래....안 봐도 빤해. 나는 다 알거든....' 하고 ....신포도를 먹는 모양세를 한다....
만일 그렇게 다 똑같다면..뭐 하러 밥은 매번 다르게 먹는가....어차피 김치찌개를 먹든, 순두부를 먹든 나오는 결과는 똑같은데.....하지만 결과는 다르지 않은가.....
점점 신포도가 자라고 있다. 이제는 무기력해져서 ....뭔가 말하려고 해도 지쳐간다. 포도나무를 흔들어서 떨구고 싶어도 이 나무 자체가 그렇게 쉽게 흔들려서 떨어지는 과일이 아니니 손을 뻗어 조심스럽게 따야 한다. 그냥 과일나무였으면 '저 과일 내가 흔들어서 반드시 딸거야...시었는지 익었는지 먹어봐야지....' 그러나 포도는 안된단 말이다....
무기력은 뭔가를 이루려고 대항하려 할 때 발목을 잡는다. 어차피 사장님한테 얘기해도 안 될텐데.. 국회의원님들한테 얘기하면 들어줄까.........'어차피 일도 많으시고....개인이 가지고 불만이나 대안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하고 포도를 따지도 않고....안 된다고...신포도라고 단정하게 된다.....이제 세상의 모든 포도들은 신포도가 되고....그냥 해도 어차피 안 될 거야, 하고 넘어가게 된다....정의롭지 못한 것이 있어도,,,,불합리가 있어도..저건 아니라고 생각해도...너무나 단단하게 다져진 '안 돼,,,안 바뀌어, 해봤자 더 큰 화만 남아,,,나만 손해봐. 어차피 안돼....' 이렇게 말하며 저건 신포도라고 외친다.
한 번은 취미로 그림을 배우는데 아는 선생님이 오셨다가 말하시기를...이렇게 그린다고 다 뭔 소용이야...어차피 다 인간은 죽는데....하시며 신문의 그림을 보시다가 툭 옆으로 던지셨다. 옆에서 그림을 낑낑 거리며 그리던 나는 그 말에 몹시 충격을 받았다. 의욕이 너무 상실되어 그러면 인간은 뭐하러 먹고 *고 자나요? 하고 화를 냈던 기억이 난다....그 분은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그림을 잘 그리려고 애쓰던 초보자에게 그 말은 정말 큰 상처였다. 그러니 이제부터 신포도라고 하지 마라...그 누구도 담벼락에, 산 속에, 비닐 하우스에서 익고 있는 포도들에게...그리고 이 세상의 포도들에게 신포도라고 말하지 마라....포도가 기분 나쁠 것이다.
지금 포도가 다 익은 계절이 아닌가....그리고 포도는 놔두면 그냥 다 익는다...오직 신포도는 여우의 구차한 변명이다....그러니.....다음부터는 꼭 따서 먹어보아라....모두 단포도일 것이다...
신포도 소리만 들어도 입에서 침이 고이고 이가 시어지는 느낌이다...
그러니....일어나서....사다리를 가지고 오든....의자를 가지고 오든....장대를 가지고 오든.....당신이 먹고 싶은 포도는 따라.
너무 포도만 보고, 포도가 인간처럼 알아서 내 입속에 와 주기를 바라지 마라.
포도는 우리의 인내를 실험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포도는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따서 먹을 수 있고, 맛 없으면 맛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왜 따 먹어보지도 않고 시다고 하는가.....망상이 난무한 사회에서 여우는 병들어 간다....여우를 살리는 법은 오직.....그에게 귓속말로 속삭이는 일일 것이다.
이 번에는 못 땄구나....괜찮아.....다음에는 꼭 딸 수 있을거야.. 왜냐하면 포도밭 주인이 지금 판매하러 나가서 없거든....... .
누가 포도를 사러 안성에 왔다가 들렸다는구나.
https://www.youtube.com/watch?v=aKLQ4MLeSTM&list=RDMM&index=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