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며칠전부터 계속 들렸는데 나는 지하실이 무서워서 차마 내려가지 못했다. 여기는 곧 재개발이 된다고 하는 아파트인데 아직도 무엇때문인지 계속 늦어지고 있다. 나는 3년째 살고 있는데 , 집을 짓는다고 해도 나와는 사실 아무런 상관이 없다. 어차피 나는 떠나야 하니까. 그런데 밖에 화단에 물을 주러 나갔다가 지하실 창문살 틈으로 들려오는 그 물소리가 나를 너무 거슬리게 한다.
생각해봐라....물소리가 끊임없이 흐린다...잘 때도, 밥 먹을 때도, 밖에 있을 때도........
나는 재개발 아파트, 엄밀히 말하면 주택에서 살기는 처음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 저기서 문제가 터지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그냥 겉만 노후하고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치 아주 늙은 노인의 몸처럼 여기 저기 구부러지고, 구멍이 나고, 막히고, 터지고 부스러지고 하였다.. 나는 이사오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마음껏 어질러 놓고, 벽이고 바닥을 마구 끌어도, 뭔가 그림 물감을 묻혀도, 다시 서너번 못질을 해도 마음 편안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마주친 현실은 참담했다. 주인은 지하실에 내려가서 화장실 벽에서 쏟아져나오는 물을 보고, 아무말 없더니 계량기가 거의 돌아가지 않으니 그리고 신경쓰지 말라고 하였다. 나는 계량기가 팍팍 돌아가지 않으면 수돗세가 나가지 않으니 문제가 해결된거구나 하고 안심했다. 그러나 저녁 때 차를 마시다가 다시 밖을 나와서 정원에서 지하실 창문 쪽을 보았다. 물소리가 거슬리게 났다. 누수가 아니라 줄줄 흘렀다. 그렇다면 그 물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저 쪽 다른 지하실 문 앞에 물이 고여있는데 그것은 여기서 흐른 물일까, 아니면 힌남노때 흘러들어온 물인까. 어차피 재개발 구역이라 신경도 안 쓰고 살지도 않는 지하실들이지만 그래도 그 물의 정체가 몹시 궁금해졌다.
다시 주인에게 전화를 했다. 주인은 짜증난 목소리로 아까 낮에 그 정도의 물이 빠졌으면 계량기가 엄청 돌아갔을텐데 그것 밖에 안 돌아갔는데 왜 그렇게 신경을 쓰냐고 몹시 화를 냈다. 돈 들어갈까봐 그런 것이겠지만, 나는 누수로 인해 다른 문제가 발생할까봐 겁이 났다. 예를 들면 전기 합선이나 등등.......
나는 이럴 바에는 차라리 물을 안 쓰겠다고 생각하며 계량기를 잠그었다. 내일 따로 사람을 부르든지 생각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노인이 되어 ,아프다고 할 때 누군가 내 마음을 들어주고, 나를 병원에 데려다주고, 신경써 줄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의 삶을 지속과 영원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뭔가 영혼을 꽉차게 하고, 눈물이 나게 할 것 같지 않은가. 누군가 당신이 노인일 때 옆에서 당신의 겉모습 뿐만 아니라 어딘가 물처럼 누수되고, 터지고, 부러지고, 떨어져나가고, 헤지고, 기울어지고, 벗겨지고, 부서지는 그런 당신을 지켜봐주고 화내지 않고, 안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재개발이 될 아파트는 아마도 나이 많은 노인일 것이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세대들에게 얼마나 애를 썼겠는가. 당신이 자동차를 사면 고사를 지내고 기도를 하듯 , 이 아파트도 그렇게 소중하지 않겠는가. 아파트에 불이 나고, 이상한 사람들이 험악한 짓을 하고, 아이들이 사라진다면 그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는가. 그동안 그런 일 없던 것 만으로도 고마워 돈이 들어도 그 노인이 우리에게 베풀어준 사랑을 작게나마 보답하면 안 되는 걸까. 어차피 죽어질 노인이라 생각한다면 당신은 삶을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지금 누구의 품안에서 오늘도 두 다리를 쭉 펴고 자고 먹고, 웃는가. 어차피 죽어 없어질 노인이라고 이부자리에서도 중얼리는 당신. 그러면서도 다시 갈 곳이 없어 기어들어오는 당신.....지저분하다고 욕하고, 냄새난다고 무시하고, 짜증난다고 이웃집에 흉보는 당신
.......그래서 그 노인이 갑자기 떠난다면 어찌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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