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곳

비속어

랍비의 숲 The Forest of Rabbi 2022. 9. 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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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와 보리. 유채, 랍비의 숲

 

비속어

비속어 때문에 계속 뉴스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이런 말이 그냥 공개가 되지 않았으면 당연히 넘어갔을 일이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이렇게 문제가 생긴 것이다. 1990년대에 한 때 욕 사전을 만든다느니 하며 떠들었던 어떤 하이텔의 모임의 회원이 있었다. 그냥 했는지 누군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그런 욕 사전은 무척 참신하게 들렸다. 마치 구전 설화를 모으는 느낌까지 들었다. 당시만 해도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아 누가 그렇게 욕을 찰지게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욕이 많은지 알 길이 없으니 그런 사전을 만들면 타인을 이해하는데 참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솔직히 서로 다른 지방의 욕들을 들어본 적도 없고, 방송국에서는 나오지 않으니..... 누가 특이한 욕을 하면 그게 욕이야? 정말 이쁜데.... 하고 아쉬워할 정도이다. 특히 내게는 '니*럴'이라는 욕을 처음 들었을 때 어감이 예뻐서 이게 욕인가 할 정도였다. 나중에 이게 심한 욕이라는 걸 알았지만 은하수를 나타내는 순수 우리말인 '미리내'라고 착각할 정도여서 슬프기까지 했다.


사람들 중에 비속어를 안 쓰는 사람들이 있을까. 화가 나거나 친한 친구끼리는 어느 정도는 쓰지 않나.... 일부러 괜히 터프하게 보이거나 마치 힘 있는 것처럼 쓰기도 하지 않나.... 욕까지는 아니어도 "아 저기 앞에 가는 여자.... 냄비!" 하고 말하는 남자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일일이 대꾸하기도 싫고 무섭기도 해서, 그냥 지나치기도 했다. 또 '야, 너 **" 하며 심한 말을 지나가며 살짝 귓속말로 하는 아저씨도 있었다. 너무 심하니 이 정도로 해두자... 그러나 1990년대에는 뭐 들고 다니는 핸드폰이 있나, 공중전화박스가 골목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렇게 기분 나빠도 욕을 먹고살았다..... 대들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게 아니라.... 안 대드는 것이.... 욕을 피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디를 가든 CCTV에 블랙박스에 음성 녹음기에 자유로운 곳이 없다. 안전과 자유를 위해 만들었지만 또 어떤 때는 눈치를 봐야 하니 말이다. 이제 욕은 점점 자신의 뿌리를 내리기가 힘들어지는가 보다. 그러고 보니 욕을 안 사용한지도 정말 오래된 것 같다. 그러나 또 욕의 특성상 화나는 일이 생기면 바로 튀어나온다... 아마도 뇌 어딘가에서 신선하게 보관되어 있나 보다. 욕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욕 때문에 문제가 일어나니..... 참.... 욕이라는 것은, 할 때는 시원한지 모르지만 그 뒷감당은 골치 아픈 일이다. 욕은 인간의 본성을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본인들은 어떠한 욕을 주로 사용하시는지..... 욕의 목록을 만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욕까지는 아니어도 주로 화날 때 어떤 언어를 사용하는지는 파악하는 것이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예를 들어본다.
1. 아, 짜증 나-----신경질적이거나 예민한 사람처럼 보인다.
2. 도대체 왜 맨날 나한테만 이러는 거야----가만히 들어보면 피해의식이 있는 것 같지 않나.
3. 네가 늘 그러지 뭐-----사람을 무시하거나 깔보는 것 같다.
4. 한심하다! 한심해!----상대방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관대하기보다는 무시하고 본인이 우위를 점령하고 있다는 느낌.
5. 내가 뭐라고 했지----본인의 말에 복종 내지, 본인 중심으로 돌아가지 못하면 불편해하는 것 같다.
6. 너는 왜 맨날 그렇게 하고 다녀----이 또한 본인이 기준을 설정해 놓고, 그것에 못 미치면 가차 없이 자를 들이대는 듯
7. 갑갑하다 갑갑해!--일이 안 된다고 초조해하고 답답해하는데 상대방이 자신처럼 숙달되지 못한 것에 대한 얕잡아 보는 듯
8. 그 버릇 어디 가니---어지럽거나 못마땅한 것을 봤을 때 주로 하는 것으로, 그 사람을 낙인 내지 고착화시킴. 개선의 여지를 안 줌


굳이 욕까지는 아니어도 욕처럼 들려오는 것들이다. 이런 말들은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오랫동안 곰팡이처럼 자란다. 특히 이 말을 들은 사람의 영혼에도 검은곰팡이가 자란다. 말하는 사람은 좋은 뜻으로 했겠지만 한 두 번 한 걸로 이제 좀 끝내시는 것이 어떤지.... 이렇게 써보니 욕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애들이 참 많기도 하다.... 가끔은 솔직히 욕도 해보고 싶다.... 며칠 전에 보니까 개 산책시키는 곳도 있던데, 욕도 마음껏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욕의 성장과 무한한 발전을 위해......
자꾸만 욕을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하고 싶어지는 지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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