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혹은 잘 모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보면 "아! 그 그림"이라고 금방 알아 차릴 것이다. 코로나가 터지기 3년 전 쯤 보건소에 간 적이 있다. 워낙 배가 뚱뚱하게 나와 대사증후군이 있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검사를 해준다고 관리도 해준다고 하길래 들렸던 것이다. 병원에만 갔지 보건소에는 딱히 들릴일이 없어서 내게는 무척 생소했다. 대기 등록을 하고 의자에 앉아서 기다리다가 일어서서 서성거렸는데 안 쪽 벽쪽에 커다란 숲 그림이 보였다. 호크니의 숲 그림이었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싶지만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해 방황하는 나에게 그 그림은 뭔가 낯설게 다가왔다. 80대가 넘는 노인이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색깔이 알록 달록, 다채롭고 영롱하다고 할까, 눈부시다고 할까. 하여간 노인이 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생동감이 있다. 대개 우리는 노인이라고 하면 우충충한 옷, 검고 데데한 느낌, 가난, 우울, 병으로 인한 수척함, 고뇌, 주름, 힘없음, 질질 끄는 모습.....주로 이런 것으로 기억하지 않는가....만약 이렇게 기억하지 않는다면 당신 주위에는 아마도 활기찬 노인이 많아서 일 것이다.
내 주위에는 주로 이런 분들이 많았다. 항상 열심이 일을 하고도 가난했다. 재산이 생겨도 자식들이 사업하겠다고 찾아와 고개를 숙이고, 심지어 며느리, 딸까지 꿀이나 술을 사가지고 부탁하며 놓고 갔다. 그러면 어느 부모가 거절하겠는가. 자식들이 죽겠다는데. 게다가 노인 연금까지 자식이 관리한다며 자기 계좌로 해놓아 평생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분도 계신다. 나이 들어 할게 없으니 목욕탕에서 청소나 세신 일을 해주기도 하고, 그것도 더 이상 못하면 손수레에 박스나 폐휴지를 줍기 위해 하루 종일 돌아다니신다. 올바르게 산다는 것은 어쩌면 남의 멸시와 질타를 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왜냐면 사회에서 가장 하위층에 있다는 것은 이미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멸시의 반응이 오기 때문이다.
한 달 전쯤인가 아시는 분이 이직을 하셨다고 하였다. 어린이집에서 요리사로 일하며 갖은 양념, 즉 된장이나 간장 등을 손수 만드시고, 야채 소스도 애들 몸에 좋으라고 직접 과일을 이용해 만드시는 분이셨다. 어머니들이 음식을 맞보고 아이들을 이 어린이집으로 옮겼다고 하였다. 원생들이 배가 늘었다고 기뻐하시면서도, 보조 요리사 없이 혼자 다 해야 하는 어려움을 토로하셨다. 그렇다고 월급이 오른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들도 음식이 맛있자 거의 요리 천재라는 말까지 할 정도로 칭찬을 했다는데 정작 본인은 혼자서 그 많은 야채 다듬기, 밥짓기, 간식 만들기, 끓이기, 조리기, 튀기기, 볶기....를 위해 새벽 4~5시면 집에서 새벽 버스를 타고 나와야했다. 음식 맛이 좋은 것은 손이 베어서, 피가 들어가서라고 말했던 것 같다다. 맛이 그저 단순하게 나온 것이 아니라 끓는 물에 손이 데고, 칼에 베이고, 미끄러지고, 추위에도 하루 종일 서서 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60 중반쯤의 나이가 되었으니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그 분과 최근 연락을 하게 되었다. 코로나 때문에 건강을 묻다가 직장 얘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리고 이직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 분은 이직한 직장에 대해서 바로 얘기하지 못하셨다. 눈치는 채고 있었다. 좀 있다가 부끄러운 듯 조용히 말씀하셨다. 건물에서 청소 노동일을 한다고. 그러나 마음 맞는 아는 언니랑 같이 하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며 재미있게 하신다고. 오히려 요리사보다 덜 힘들고 자기 할 일 딱 청소하면 옥상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고, 야채도 고추도 키운다고 하셨다. 옛날 일보다 뱃속은 편하실거라는 말을 드리자, 인정을 받았다는 느낌을 받으셨는지 어떤지 목소리가 명랑해지셨다. 요리를 그렇게 잘하시지만, 계속 요리를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또 깨끗하게 청소하는 일로 다시 생기를 찾으셨으니 그녀 삶의 마룻바닥은 반짝반짝 윤이 날 것이다.
호크니는 아이패드로 그림도 그리고, 팩스가 나올 때는 팩스로 그림을 보냈다고 한다. 복사기가 나왔을 때는 복사기를 이용했고,폴라로이드 사진기로 합성 이미지를 만들어 포토 콜라주 작업을 하기도 하였다. 호크니는 인간의 늙음과 상관없이 자기 본연의 욕망과 하고 싶은 일에 대한 열정으로, 겉모습은 그저 겉모습일 뿐이라는 것을 철저하게 보여주시는 분 같다. 그분이 하는 작업들을 보면 결코 노인답게가 아니라......"나답게" 라는 말을 더 떠올리게 한다.
우리는 "~답게" 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다. 특히 어떤 때는 무슨 족쇄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여자에게 "여성답게"라든지...나이가 60이면 "60답게" , 화가이면 "화가답게" , 배우이면 "배우답게" ,"선생이면 선생답게"....도대체 "~답게" 라는 말은 어디서 온 것일까. 평소에 ~답게를 실천하기 위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모자를 쓰고, 뾰족구두를 싣고, 스카프를 휘날리며 화려한 색상의 옷을 입어야 화가인가.? 좀 편안하게 살고 자기가 하는 일에 더 신경쓰면 안되는 건가.
노인답게 살기 위해서 , 노인답게 살라고 주위에서 어떻게 하는가. 어머니 떠나면 바로 요양원을 보내야겠다고 남편하고 떠드는가. 양로원은 의사도 있어서 고급호텔같다며 세상천지 그런 좋은 곳은 없다머 식구들을 제 편으로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는가. 노인들은 기초대사량이 적으니 맛나는 거 드려도 소용없다며 자기들끼리 쩝쩝대며 냉장고를 뒤지는가. 아버님은 쓸데도 없는데 그 연금 도대체 어디다 쓰냐고 일일이 묻고 따지는가. 노인들은 갈 곳도 없는데 뭘 그렇게 저녁 늦게 쏘다니냐며 핀잔을 주는가. 늙으면 아픈거 당연하다며, 왜 아픈 소리를 밥 먹듯 하냐며 짜증을 내는가.
그래서 이제 당신은 그들의 말을 듣고, 노인답게 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라 그들의 목소리에 장단을 맞춘다. 친구랑 커피 마시는 것도, 술 한잔 하는 것도, 책 사는 것도, 과자 사는 것도 하지 않기로 한다. 햄버거 사먹는 것도, 영화관 가는 것도, 연극보는 것도 노인답지 않다고 해서 그만둔다. 심지어 그런 일을 하면 노망이 들었다고 할까봐 두려워 눈치를 본다. 내 돈이지만 왠지 어디다 쓰냐고 물을까봐 겁이나 쓰지 않는다. 여행을 가고 싶어도, 여행은 무슨 여행? 혼자서요? .... 라는 말을 들을까봐 여행은 포기한지 오래다... 여자친구나 남자친구를 사귀면 '징그럽다, 미쳤다, 노망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라고 할까봐 그냥 눈을 땅에 묻는다. 당신은 철처하게 노인 속의 젊은이를 잊기로 한다. 아니 죽이기로 한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때까 되면 빨리 죽어야지...얼른 가야지...왜 안 죽나.....빨리 가고 싶어....삶의 낙이 없어...... 그렇다면 노인이라는 것은 그렇게 힘없고 죽음만을 기다리는 존재일까? 그냥 사람들의 멸시와 무시 때문에 폐휴지를 줍느니 차라리 계속해서 가난하게 살고, 남들에게 넥타이 맨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다단계에서 나오지 못하고 원금만 찾으면....이라고 외치며 아직도 팔리지 못한 물건을 한 가득 쌓아두는가. 없어 보이는 삶은 싫지만, 실제로 없는 삶은 그 얼마나 자신의 인생을 이율배반적으로 만드는가......그 간격에서 나오는 고통과 그것을 숨기려고 얘쓰는 모습은 처량하지 않은가.
자,,,,이제 반드시 호크니가 아니어도 좋다. 새벽 4. 5시 사이에 밖을 한 번이라도 나가보자. 그러면 그곳에 무시를 당해도 정직하게 살고자 하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겨울에는 추위에 손과 발이 꽁꽁 얼고 ,미끄러져서 다리와 손이 다치거나 부러지는 경우도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겁을 주어도 꿋꿋하게 살아가신다. 그런 그분들의 총체적인 삶을 지금 폐휴지를 줍는다고 무시하지 말자.....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테니까.. 또한 어리신들한테 나오는 노인 연금은 어르신 계좌로 넣어드리자. 성경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부모님이 가지라고 해도 받으면 안된다. 이건 최소한의 생명 유지비가 아닌가.....
노인 속의 젊은이를 끄집어 내어 노인과 젊은이가 반비례로 가는 삶을 살아보는 건 어떤가.....늙을 수록 그대는 점점 젊은이가 되는 것이다.....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흘러간다 까지는 아니더라도....그대는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오래된 고전 책이자 명화가 되어 버린 그대이기에.......
이건 왜 이렇게 새롭지? 이건 어떻게 쓰는 물건이지? 이런 곳을 나도 가봐야지....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워볼까....이것도 먹어보고, 저런 것도 입어봐야지. 왜 저들은 저렇게 생각할까, 내가 좀 알아봐야지 ..좀 물어봐야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내가 잘못 생각하고 살았을 수도 있으니까....... .혹시 이 같이 생각하고 계시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정말로 위대한 노인이시다. 전 세대를 아우러 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https://www.youtube.com/watch?v=9MJPhPbctGE&list=PLrn1sPZMgeC2fsqqRPKoIwamQMJPXOgMk&index=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