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가 있는 곳

눈빛

랍비의 숲 The Forest of Rabbi 2022. 11. 1.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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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에 이태원에서 사고가 발생한 후, 오늘로 4일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고 있다. 오늘은 신설동쪽에서 강의를 마치고 오는데 검은 근조 현수막이 걸려져 있어서 마음이 또 굳어졌다. 그것도 차를 운전하면서 가다보니  더 많이 걸려져 있는게 보였다. 오늘 어르신들 강의가 있어 만나뵈니  우울하다고 하셨다. 평소같으면 떠들고 하실텐데 별로 말이 없으셨다. 차 안에서 주파수를 맞추는데 노래들이 한결같이 슬펐다. 평소에는 그냥 그렇게 들렸던  '총맞은 것처럼'이라는 가요가 너무나 애절하게 들려왔다. 특히 이 부분에서는 그냥 가사가 머리에 달려와 박혔다.

심장이 멈춰도 이렇게 아플 것 같진 않아
어떻게 좀 해줘, 날 좀 치료해줘
이러다 내 가슴 다 망가져, 구멍난 가슴이....

애도의 기간이라서 그런지  오늘 만났던 어르신 중 한 명은 어제 자신이 옷을 잘 못 입고와서 누군가에게 무안을 당한 게 아닌가 하고 속상해하셨다. 나도 바삐 일하러 나오면서 애도의 기간인데....하고 옷에 대해 생각을 했다. 어르신들 옷들도 다  수수하고 어두운 계통이었다. 

어제는 서울에서 남양주를 거쳐 아천 IC를 빠져나오는데 얼마 있다가 큰 태극기가 휘날렸다. 그런데 평소대로 걸려있는게 아니라 조기가 게양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자 또 마음이 심난해졌다. 사실 어제가 10월의 마지막 날 31이었다. 핼로윈 축제가 곳곳에서 일어나는 날이었다. 그러나 이런 안 좋은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에버랜드 핼로윈 축제도 그 밖의 개인 콘서트나 텔레비전의 쇼프그램도 줄줄이 취소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게다가 외국에서는 이번 사고로  핼로윈을  통제하느라 경찰들이 엄청 동원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왜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수업을 끝내고 한의원에 가침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그곳에 사모님도 텔레비전을 보시며 우울해 하셨다. 직원이 차단기에 넘어져 다리에 금이 가고, 머리도 부딪힌 모양이었다. 수술을 하느라 당분간 나오지 못한데다가 이렇게 슬픈 소식이 보도되니 얼굴은 그야말로 초췌해보이셨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얼굴에는 슬픔만이 보였다.

저녁에 밥을 먹는데...밥 맛도 없고 미끌거렸다. 평소같으면 맛있는거 먹으러가자고 할 텐데, 어디를 가도 다 맛이 없을 것 같다. 집에 와서 뭘 먹어도 다 맛이 없다. 텔레비전을 보면 뉴스 속보와 뉴스 특보가 번걸아 방송된다..사망자 수가 늘어갈 때마다 고개를 돌리게 되고, 어디선가 울음 소리와 통곡이 들리는 듯 하다. 외국인 사망자 사진이 나올 때는 너무 미안하고 아까워 .......어떻게 ....하면서, 우리나라를 미워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빠르게 스친다. 

11월 1일 .이제 단풍은 너무나 많이 떨어져 외진 가로수 길을 덮고 있다. 초라한 가게에서 늙은 주인이 나와 큰 비로 쓸고 있다. 바람은 점점 차고,  어제는 작은 알로에 화분을 들여놓았다. 춥냐고 물어보니, 통통했던 몸이 바짝 붙어서 끝이 붉고 말라가고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현관에 들여놓았다. 연립주택 배란다까지 올라온 나팔꽃들도 다 씨를 맺어 대룽 대룽 매달려있다. 그러나 걷어내지 않았다. 아직 익지 않은 씨들이 푸르게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저것들이 쓸모없다고, 이제 다 살았다고 거두어내면 죽을 것 같아 차마  지저분해도 그만둔다.....지저분한 것보다 생명이 먼저라는 생각이 언제부터인지 자리잡게 된 후.....이제는 잡초까지 뽑는데 망설이고 있다. 잡초도 넓게 보면 생명이라고 생각한 후에는 작은 화단을 손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것도 병인지도 모른다.... 오죽하면 돈나물을 화분에다 키웠는데 잔뜩 강아지풀이 같이 자라고 있어도 뽑지 못해 그냥 놔두었는데, 앞집 아주머니가 안타까웠는지 강아지풀을 몽땅 뽑아버리셨다. 내가 못한 것을 해줘서 시원하기도 했지만....이거 생명을 떠나가게 했으니 큰일이네.......어쩌지...하는 희한한 마음이 드는 것이었다.

가을은 익어가고, 점점 추워지고...침묵 속으로 걸어갈 것이다.....그래서  또 다시 생명은 더 뿌리깊게 자랄 것이다.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스로의 내면으로 들어갈 시간이니까....이제 고스란히 자신의 자아만을 볼 시간이 오니까.....

그래서 나무 3 그루를 주문했다. 이 가을에 무슨 나무를 심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을에 오히려 더 뿌리를 잘 내린다고 한다....봄에 심으면 잎이 나와서 영양분을 끌어다 쓰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겨울을 잘 나야한다는게  문제이다. 혹시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곧 도착할 나무들을 어떻게 심어야하나 며칠째 고민중이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화분에 심어서 집안에 들여야 하나....아니면 밖에다 심고 비닐로 씌워야 하나 벌써부터 오지도 않은 식구들을 걱정하고 있다. 그것들이 믿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하지만.....하나도, 정말 하나도 불편하거나 귀찮치 않다. 오히려......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잘 키울 수  있을까 생각한다....그것들이 주는 행복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행여 그것들이 아무것도 안 준다 해도, 그저 뾰족한 가시만 잔뜩 준다 할지라도 내게로 왔기 때문에....나는 그것들에게 빛을.......내 눈빛을 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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